영풍·MBK 83만원 vs 고려아연 89만원 대결
영풍정밀 인수가도 3만5000원으로 올려
고려아연 “시장상황·금융당국 우려 경청, 고민 끝 결정”
업계 “최윤범 회장 측 유리하나, 불편한 동거 불가피”
배임 이슈·자금 상환 등, 법적·경영 리스크도 변수
[헤럴드경제=김성우·서재근·심아란 기자]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11일 긴급 이사회를 열고 자사주 공개매입가를 89만원으로 인상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영풍·MBK파트너스(이하 MBK) 연합이 공개매수가를 “83만원에서 더이상 올리지 않겠다”고 선언한 상황에서, 주가를 올려 영풍·MBK의 청약을 저지하기 위한 마지막 승부수로 풀이된다.
고려아연은 이날 이사회 직후 자사주 공개매수 가격(자기주식 취득 공개매수 가격)을 기존 83만원보다 6만원 올린 주당 89만원으로 인상한다고 공시했다. 취득 예정 주식수 역시 362만3075주로 발행주식수의 17.5% 수준(기존 15.5%)으로 상향했다. 이에 따라 고려아연 측으로 분류되는 베인캐피탈의 확보 물량까지 포함하면 공개매수 매입 주식은 기존 18%에서 최대 20%까지 확대될 수 있다.
또한 기존대로 최소 매입수량 조건 없이 매수를 진행하고, 취득예정기간도 이달 23일까지 유지하기로 했다. 고려아연은 자사주 공개매수에서 취득한 주식 전량을 소각한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최 회장 측은 이날 특수목적법인(SPC)인 제리코파트너스를 통해 추진하는 영풍정밀 공개매수가도 3만5000원으로 기존 대비 17% 인상한다고 공시했다. 이로 인해 추가로 필요한 자금 200억원은 티케이지태광(옛 태광실업)에서 1년 만기, 이자 5.7% 조건으로 빌렸다. 최 회장의 영풍정밀 지분 최대 매수 물량은 기존대로 25%를 고수한다.
이번 고려아연 이사회 결과와 영풍정밀 공개매수가 인상은 최 회장 측이 영풍·MBK 측과 벌여온 공개매수 승부에서 쐐기를 박기 위한 마지막 카드로 분석된다. 다만 최근 금융당국의 우려 등과 관련 고려아연 관계자는 “이사회에서 의결사항을 거치기 전 시장상황과 금융당국의 우려를 경청하고 이사회에서 거듭된 고민과 토론 끝에 결정을 내리게 됐다”고 강조했다.
현재 최씨 일가의 보유분에 현대차와 LG화학, 한화 등 재계 백기사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을 더한 최 회장 측의 우호 지분은 36.2% 수준으로 추산되는데, 영풍과 장형진 영풍 고문 일가가 보유한 지분은 33.1% 수준으로 양측의 지분 차이는 3.1% 수준에 불과하다. 이번 공개매수전에서 주주들이 한쪽에 몰릴 경우 고려아연의 경영권 행방이 달라질 수 있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연합] |
고려아연은 이번 자사주 공개매수에서 실질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유통주식 물량은 전체 주식의 15% 안팎이 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번 결정으로 상황이 최 회장 측에 유리하게 흐를 수 있다는 재계의 전망이 나온다. MBK 측의 공개매수가 14일에 종료돼 상대적으로 빨리 대금을 정산받을 수 있고 세금 부담도 덜어낼 수 있는 장점이지만, 최 회장이 이를 뛰어넘는 주당 6만원의 가격 메리트를 제시한 만큼 주주 청약 유인을 더욱 쉽게 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MBK 측은 기술적인 수익률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해외 기관의 경우 양도세 납부 의무가 없는 점을 감안하면 MBK 청약이 유리하다는 이유에서다.
고려아연이 자사주 공개매수 물량을 늘린 것과 관련해 지수를 추종하는 패시브 펀드의 유입세가 증가할 점에도 주목한다. 패시브 펀드의 공개매수 청약이 증가할 경우 일반 주주 몫까지 감당할 여력이 부족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한 현재 MBK와 최 회장 모두 고려아연과 영풍정밀 공개매수 응모율과 관계없이 청약 물량을 전량 사들이기로 하면서 양측의 ‘불편한 동거’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공개매수 성패 여부와 관계없이 이사회 장악을 위한 표 대결 등 갈등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한편 향후 변수도 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최 회장이 고려아연 자사주 공개매수의 재원 관련 회사를 차주로 세운 차입금을 활용하고 있다는 점을 거론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매수가격 인상이 이사진의 배임, 선관주의 의무 소홀 등 리스크를 키울 수 있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이달 초 법원에 제기한 1차 가처분소송에서 패한 영풍·MBK 연합은 ‘고려아연의 자사주 취득방식 공개매수를 중지시켜 달라’는 내용의 2차 가처분 소송을 제기하며, 고려아연 측 경영진의 배임을 문제삼은 바 있다. 또한 고려아연이 2조7000억원 가량의 자사주 취득을 추진하는 것은 취득한도를 넘어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영풍·MBK 연합이 주장하는 한도는 586억원인데 반해 최 회장 측은 6조원이라고 반박하면서 양측 간 공방이 예상된다.
최 회장은 앞선 기자간담회를 통해 “장 고문과 그간의 오해를 해소하고 영풍과 고려아연의 협력적 관계 회복 등 두 회사가 직면한 제반 사항들에 대해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허심탄회하게 상의하고 싶다”면서 “영풍이 원한다면 각종 사법이슈가 걸린 석포제련소의 현안 해결에 기꺼이 도움을 줄 준비가 돼 있다”고 화해의 제스처를 보이기도 했다.
한편 세금 문제의 경우 공개매수가를 상향한 최 회장에게 유리하지 않다는 반론도 있다. 고려아연이 사들인 자기주식을 전량 소각할 예정인 만큼, 이에 응한 개인 투자자는 의제배당에 대한 세금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금융소득이 많은 투자자는 최대 49.5%의 세율을 적용받을 가능성이 있는 반면, 금융소득 2000만원 이하의 개인주주에는 15.4% 세율이 부과된다. 영풍·MBK 연합의 공개매수에는 양도소득세가 매겨진다. 양도차익이 3억원을 넘을 시 최대 세율은 27.5%다.
업계 관계자는 “가격적 측면에선 최 회장 측이 더 앞서지만, 가처분 불확실성과 세금 측면에서는 영풍·MBK 연합 측이 더 유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