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일렉·LS일렉·효성중공업 전력기기 강자 왜?
AI 붐에 전력 수요 폭증…‘전기 먹는 하마’ 데이터센터
美전력망 교체 겹쳐…“2030년 납기 물량까지 요구”
선제적·과감한 증설에 준비된 호황…수주 실적↑
“향후 10~15년 전력기기 슈퍼사이클 지속될 것”
HD현대일렉트릭 울산공장 전경. [HD현대일렉트릭 제공]

[헤럴드경제=정윤희 기자] 인공지능(AI) 시대 전력 수요 폭증으로 핵심 시설인 데이터센터가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리고 있다. 생성형 AI 서비스는 일반 검색엔진에 비해 최대 30배 많은 전력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AI·데이터센터 관련 전기소비량이 2026년까지 2022년의 2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전력 수요가 늘어나면서 자연히 관심은 전력기기 기업으로 쏠렸다. 세부적으로 보면 엔비디아 등 AI 가속기 기업←메모리 반도체 기업·데이터센터 기업←전력기기 기업 등으로 생태계가 구성되는 가운데 전력기기 기업이 최후방에서 AI 시대를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국내 주요 전력기기 기업들의 주가는 올해 1월 초와 비교해 2~3배 가량 오른 상태다. 1월 초 8만7000원 수준이던 HD현대일렉트릭의 주가는 약 9개월 만인 지난 13일 28만350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같은 기간 7만3000원이던 LS일렉트릭의 주가는 14만5000원, 17만원 수준이던 효성중공업의 주가는 28만9500원이다.

최근엔 ‘AI 거품론’과 경기침체 우려에 따른 ‘블랙먼데이’ 등으로 주가가 다소 하락한 상태지만, 지난 7월 하순에는 최고가로 37만4500원(HD현대일렉트릭), 27만4500원(LS일렉트릭), 46만9000원(효성중공업)을 각각 찍기도 했다.

주가 상승은 전 세계 곳곳에서 K-전력기기에 대한 ‘러브콜’이 쏟아지는데 힘입었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AI 붐에 따른 전력수요 증가와 신재생발전 투자 및 송배전망 구축, 미국을 중심으로 한 노후화된 전력망 교체 수요가 맞물리며 변압기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현지 고객들은 이미 2030년도 납기 물량까지 요구할 정도”라고 설명했다.

유럽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에너지 안보 강화와 ‘넷제로 산업법’을 근간으로 신재생에너지 전환이 가속화하며 전력기기 수요가 늘고 있다. 중동의 경우 네옴시티 프로젝트 등 대규모 도시 개발 투자가 잇따르며 국내 전력기업들의 진출이 이어지고 있다.

HD현대일렉트릭 전력 변압기. [HD현대일렉트릭 제공]

실제 HD현대일렉트릭의 연간 수주 실적은 2021년 2조420억원, 2022년 3조4155억원, 지난해 4조4550억원으로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까지 수주 실적도 3조134억원으로 이미 지난해의 68%에 달한다. 수주 잔고도 급증해 2분기 말 기준 6조8276억원을 달성했다. 전년 대비 41.1% 늘어난 것으로, 2017년 출범 이후 역대 최대다. 지역별 매출 비중은 북미가 31.4%로 가장 크며 국내 30.1%, 중동 21.9%, 유럽 8.3%, 아시아 7.7% 순이다.

LS일렉트릭 역시 마찬가지다. 2분기 말 기준 수주 잔고는 2조8000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22% 늘어났다. 해외사업 비중 역시 2020년 24%에서 지난해 36%, 올해 2분기 45%로 지속 늘어나고 있다. 특히, 최근 5년새(2019~2023년) 북미 지역 수출액은 연평균 90%씩 늘어나는 상태다. 2분기 북미지역 초고압변압기 매출은 34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무려 685%가 늘었다.

효성중공업의 경우 중공업부문(전력·기전) 연결기준 2분기 신규 수주 금액은 1조5198억원으로, 수주잔고는 6조6000억원이다. 상반기 3300억원 규모의 노르웨이 송전청 초고압변압기 수주, 모잠비크 국영 전력회사(EDM)와 428억 규모의 전력망 강화 사업 계약을 체결하는 등 북미, 유럽, 중동 위주로 수주 실적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3분기 실적 전망도 밝다. 증권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HD현대일렉트릭의 3분기 영업이익 컨센서스(추정치)는 1678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96.49% 늘어난 것이다. 올해 연간으로는 126.05% 늘어난 7125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릴 것으로 기대된다.

LS일렉트릭은 3분기 영업이익으로 24.11% 늘어난 879억원이 예상된다. 연간 영업이익은 3823억원으로 17.67% 증가할 것이란 전망이다. 효성중공업은 3분기 영업이익은 건설부문 수익성 악화의 영향으로 0.74% 줄어든 939억원이 예상되지만, 연간으로는 29.67% 늘어난 3343억원을 달성할 전망이다.

LS일렉트릭 관계자가 지난 10일부터 12일(현지시간)까지 3일간 미국 캘리포니아 애너하임 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RE+(Renewable Energy Plus) 2024’ 현장에서 고객들에게 초고압 변압기를 소개하고 있다. [LS일렉트릭 제공]

K-전력기기가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 승승장구하는 것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오히려 과감히 진행한 선제적 증설에 힘입었다는 평가다. 이에 따라 팬데믹 동안 글로벌 공급망이 붕괴됐던 상황에서도 적기 공급이 가능했고 이를 바탕으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시장 장악력을 높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HD현대일렉트릭은 2019년 미국 앨라배마 법인의 생산공장 증설을 완료했으며, 2020년에는 약 800억원을 투자해 울산 500kV 변압기 공장을 ‘스마트팩토리’로 구축하는 작업을 마무리했다. 같은해 미국에서는 애틀란타 지역에 판매법인을 설립해 현지 영업을 강화키도 했다.

올해 7월에는 미국 앨라배마 법인의 옥외 보관장 준공을 완료했다. 같은 달 울산에서는 HD현대일렉트릭의 첫 변압기 생산시설인 300kV 공장에 대한 레이아웃 변경 공사를 완료, 생산 공정을 한층 더 효율화했다. 다음달에는 울산 공장 내 유휴부지를 활용한 철심공장 신축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지난해 12월에는 충북 청주시에 중저압차단기 스마트팩토리에 투자, 2025년 10월 완공 예정이다. 이를 통해 2030년까지 생산능력을 현재의 두배 수준인 1300만대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창립 50주년을 맞은 LS일렉트릭은 송전과 변전, 배전, 수용가에 이르는 전력의 모든 이동과정에 걸친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있다. LS일렉트릭은 이미 10여년 전부터 북미 배전시장 진입을 위해 필요한 UL인증 제품 개발을 진행해왔으며, 이를 통해 지난해까지 3년간 미국 플랜트 프로젝트로만 총 7개 배전 솔루션 사업자로 선정됐다. 같은 기간 글로벌 시장에서 15개가 넘는 사업을 수주키도 했다.

특히, 최근 2~3년간 이어진 송전기기 수요 폭증에 이어, 송전시장보다 2~3배 큰 것으로 추산되는 배전시장 호황에 대비해 증설을 이어가고 있다. 이를 위해 텍사스에 첫 생산거점을 마련 중이다. 지난해 7월 텍사스주 배스트럽에 4만6000㎡ 규모의 토지와 부대시설을 매입하고 생산설비를 구축하고 있다. 올해부터 R&D와 애프터서비스(A/S) 등 인력이 상주하며 고객사 요구에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지난 2022년 LS일렉트릭이 인수한 미국 로컬 배전시스템 기업 ‘MCM 엔지니어링’도 북미 시장 공략의 첨병으로 활약 중이다.

효성중공업 미국 테네시 멤피스 초고압변압기 공장 전경 [효성중공업 제공]

효성중공업은 지난 2020년 인수한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 초고압 변압기 생산기지 증설을 완료하며 미국 시장 공략에 본격적으로 나선 상태다. 효성중공업의 주력 제품인 100MVA급 이상의 변압기는 미국 시장에서 대형변압기(LPT)로 통칭되는데, 미국 송배전 전력의 90%는 LPT로 전달된다. 현재 미국 내 설치된 LPT의 70%는 25년 이상 연한이 도래해 향후 지속적인 교체 수요가 기대된다. LPT 수명은 통상 30~40년이다.

영국, 노르웨이, 스웨덴 등 유럽 시장 공략도 가속화한다. 효성중공업은 2020년 아이슬란드 최초로 245kV 디지털 변전소에 가스절연개폐기를 수주한 후 지속적으로 시장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최근에는 네덜란드에 R&D센터를 건립해 친환경·신재생에너지 수요가 높은 유럽시장에 맞춰 친환경 전력기기에 대한 연구도 진행 중이다.

전력업계에서는 향후 10~15년 동안 AI발 슈퍼사이클이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블룸버그신에너지금융연구소(BNEF)에 따르면, 글로벌 전력망 투자 규모는 2020년 2350억 달러에서 오는 2030년 5320억 달러, 2050년에는 6360억 달러로 약 30년 동안 3배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동원 KB증권 리서치본부장은 “전력기기 산업의 호황은 최소 10년 이상 지속될 것”이라며, “국내 주요 업체들은 선제적인 설비 투자와 기술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점유율 확대가 기대된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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