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회계, 용역계약 등에서 부정행위 적발
행정지도 등에도 여전…관행 뿌리깊단 시각도
신탁 방식 등 대안 있지만 관련 제도 개선 필요
서울 주택가 일대.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음. 박해묵 기자 |
[헤럴드경제=고은결 기자] #. 서울 노원구 상계뉴타운 최대 규모의 한 재개발 구역은 최근 조합장이 부정투표 사건으로 수사를 받으며 사업이 난항을 겪고 있다. 이곳은 지난 2010년 조합설립인가를 받았지만 조합원 간 이견으로 10년 넘게 사업이 표류했는데, 현재는 집행부 전체가 해임되는 등 내홍으로 사업이 부진한 상태다.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에 서울을 중심으로 도시정비사업이 활성화되고 있지만, 조합 내 비리 등에 사업이 차질을 겪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실제로 지난 3년간 서울시 내 정비사업 조합은 무려 800건에 달하는 부정행위가 적발된 것으로 나타났다.
30일 국회입법조사처가 서울시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최근 3년간 서울시가 정비사업조합 실태조사를 통해 적발한 건수는 790건에 달했다. 적발사항은 예산회계, 용역계약, 조합행정 등이다.
국내 도시정비사업은 민간 중심으로 추진되는데, 사업추진 과정의 위법 및 유착관계, 이해관계자 간 갈등, 각종 소송 등 문제가 빈번하다. 현행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은 조합의 부정행위에 대한 벌칙과 행정제재를 규정한다. 사업 계약의 방법 및 시공사 선정 관련 계약을 위반하거나, 조합 임원 등 선임·선정 및 계약 체결 시 금품·향응 등 재산상 이익을 제공받는 행위 등에 대해 벌칙 규정이 적용된다.
아울러 서울시는 정비사업조합의 투명한 운영을 위해 국토교통부, 관련 전문가 등과 매년 조합 운영 실태를 점검한다. 결과에 따라 적발사항에 대한 행정지도 및 시정명령, 수사의뢰 등을 한다. 그러나 2021년 172건, 2022년 310건, 2023년 308건으로 뚜렷한 개선은 미뤄지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해 현장에선 부정 행위에 대한 관행이 뿌리 깊다는 지적이 먼저 나온다. 서울 한 대단지 재건축 조합 관계자는 “소위 ‘한탕 안하면 바보’란 인식이 있는 게 사실이었다”며 “가령 조합장과 관련 있는 업체와 결탁하거나 끼워넣는 식”이라고 말했다. 강남권 한 재건축 추진 단지 관계자는 “다 내려놓고 월급 300만원 정도만 받으며 일하려는 사람은 찾기 쉽지 않다”고 했다.
문제는 이런 비리가 사업의 장기화를 유발시키고, 결국 피해는 주민에게 전가된다는 점이다. 가령 ‘깜깜이 운영’에 반발하며 비상대책위원회가 생기고, 기존 집행부와의 내홍이 거세지며 사업 일정이 지체되면 결국 늘어난 사업비는 소유주들이 분담해야 하며 분양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한다. 가뜩이나 공사비가 오르는 상황에서 사업성만 더 악화시키는 셈이다. 보통 정비사업은 차질 없이 진행되더라도 13∼15년의 긴 시간이 걸리고, 이보다 지연되는 경우 입주까지 20년 이상 걸리는 경우도 많다.
이러다 보니 조합원들 사이에선 투명한 운영에 대한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정비사업 과정 및 조합의 정보공개 의무 등에 대한 이해도가 늘어난 점도 이런 추세에 한몫하고 있다. 이에 성수4지구 재개발 등 일부 사업장에선 조합 임원진이 윤리서약서에 서명하며 투명한 운영을 내세우고 있다.
한편 경험과 전문성이 부족한 조합 대신 신탁방식 정비사업이나 정비사업전문관리업체를 활용할 수 있지만, 관련 제도 개선이 수반돼야 한단 견해도 나온다. 신탁방식은 상당 수준의 수수료 부담이 발생하고, 신탁업자에 대한 토지 등 소유자의 관리감독이 한계가 있다. 이에 신탁업자의 업무수행에 대한 관리감독 규정 보완, 사업 관여 및 책임 범위를 명확히 규정해야 한단 분석이 나온다. 정비사업전문관리업자 또한 실적 및 경영실태가 관리되지 않아, 정보종합체계 구축을 의무화해야 한단 지적도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