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과수, 권영진 의원실에 분석 자료 제출
최근 5년간 급발진 신고 364건
완전파손 43건 제외 전부 ‘페달 오조작’ 드러나
車업계 “일부 유튜버 도넘은 ‘불안·공포 마케팅’ 자제해야”
작년 11월 발생한 급발진 주장 사고 차량의 페달 블랙박스 영상 일부. 당시 운전자는 “브레이크를 밟았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유엔유럽경제위원회(UNECE) 자료]

[헤럴드경제=김성우·김지윤 기자]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이 최근 5년 동안 급발진 의심 사고를 분석한 결과, 실제 사고 원인은 모두 운전자의 ‘페달 오조작’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일부 유튜버와 전문가들이 급발진에 대한 불안감을 의도적으로 조장하는 영상을 최근까지 꾸준히 올리면서 완성차업계를 중심으로 “자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국과수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권영진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최근 5년간 급발진 의심 사고 분석 현황’에 따르면 지난 2020년부터 올 6월까지 접수된 총 364건의 급발진 의심 신고 가운데 차량이 완전 파손돼 분석이 불가능했던 경우(43건)를 제외한 나머지 사고(321건)는 모두 운전자의 페달 오조작이 원인으로 확인됐다.

국과수는 실제 차량에 부착된 사고기록장치(EDR) 데이터를 면밀히 분석하고 이번 결과를 도출했다.

EDR은 사고가 발생하게 되면 사고 시점 이전 5초 동안의 각종 데이터를 휘발성 메모리에 기록, 저장하는 장치를 말한다. 각각의 제어기로부터 정보를 수신 받아 사고 분석 장치로서 가장 정확한 수단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이나 유럽·일본 등에서도 의도하지 않은 가속 사고 발생시 EDR을 기반으로 조사가 이뤄진다.

실제 해외 선진국에서는 급발진 관련 이슈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 완성차 업계의 분석이다. 인구 고령화에 따라 한 해 3000건 이상의 페달 오조작 사고가 발생하는 일본에서는 ‘급가속’ 또는 ‘페달 오조작 사고’라는 표현이 통용된다. 기본적으로 ‘운전자의 인간적인 실수(휴먼에러)에 의해 사고가 발생한다’는 인식이 자국 내에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미국에서도 급발진이란 용어 대신 ‘의도하지 않은 가속’(SUA)이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다. 법정에서도 현재까지 급발진이 인정된 사례가 없다. 지난 2009년 발생했던 도요타 급발진 사건의 경우 전자계통의 오류가 아닌 가속페달 자체의 문제로 결론이 났다.

반면 국내에서는 급발진과 관련한 이슈가 해마다 거듭 대두되고 있다. 이러한 원인 중 하나로 그동안 발생한 페달 오조작 사고 발생시 일부 전문가 교수와 정비 명장, 인플루언서들이 대안 매체를 통해 ‘차량 급발진’ 가능성을 제기해 온 점이 꼽힌다.

업계 내에서는 이들 전문가 중 일부는 페달 블랙박스 사업을 겸업하면서 매체를 통해 페달 블랙박스 설치를 독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또한 A인플루언서가 지난 2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서 앞서 한 지방에서 발생한 사고를 조명한 점도 논란이 되고 있다. 그가 공개한 블랙박스 영상에서는 천천히 오르막길을 오르던 차량의 속도가 내리막길에서 점점 높아지다가 사고가 나는 모습이 담겼다.

영상 속 제보자 B씨는 사고 후, 해당 사례가 차량 급발진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페달 블랙박스에서는 그가 내리막길에 진입하기 전 가속 페달에서 발을 뗐다가 다시 올려놓는 모습이 담겼다. 이에 A인플루언서는 영상을 통해 “페달 블랙박스는 불필요한 다툼을 막기 위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이번 영상과 관련 한 업계 관계자는 “페달 블랙박스 시장은 전형적으로 불안감과 공포심을 불러일으켜 소비자가 물건을 구매하게 하는 전형적인 공포 마케팅 사례”라며 “급발진 주장 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밟고 있는 페달에서 발을 떼라’는 인식의 확대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꼬집었다.

또한 공포마케팅이 계속될 경우 여론 상황에만 관심이 쏠리면서 향후 예방할 수 있는 페달 오조작 사고를 방치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지적도 있다.

고령화 이슈가 한국보다 먼저 도래한 일본에서는 실제 페달 오조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21년부터 페달 오조작 방지시스템을 도입하기 시작했고, 2021년에는 페달 오조작 사고율이 10년 전에 비해 50% 가까이 축소된 바 있다.

완성차업계 관계자는 “이번 국과수 조사에서도 알 수 있지만 급발진 주장은 대부분 운전자 본인이 작동시키고 있는 페달이 브레이크라고 확신하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라면서 “차량 결함에 의해 급발진이 종종 발생할 수 있다고 믿는 확증편향을 통해 오히려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최근 완성차 수준이 크게 높아지면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다양한 장치들이 많이 들어간다”면서 “실제 선진국의 안전 테스트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철저한 검증이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 7월 발생한 시청역 역주행 참사 이후 급발진에 대한 갑론을박이 여전히 이어지는 상황에서, 이번 국과수 통계 분석 결과가 각종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검찰은 과학수사 결과를 토대로 당사 참사 원인이 가속페달 오조작 때문이라고 보고, 사고 운전자를 구속기소한 바 있다. 현재까지는 EDR, 폐쇄회로(CC)TV와 신발 바닥의 패턴 흔적 등의 정황으로 운전자의 페달 오조작 사고 가능성에 좀 더 무게가 실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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