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업황 부정적 전망 나오자
자금 저리조달 따른 건전성 점검

“반도체의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았다. 반도체 산업은 성장세를 지나는 ‘후기 사이클(Late Cycle)’에서 침체가 시작되는 ‘정점 사이클(Peak Cycle)에 접어들었다.”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의 최근 보고서를 본 산업은행 리스크관리 직원들은 깜짝 놀랐다. 산은이 SK하이닉스에만 수천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저리로 조달해줬는데, 반도체 업황에 대한 부정적 전망이 나오면서다. 한국전력의 계속되는 적자로 가뜩이나 산은의 재무건전성에 대한 부담이 큰 상황에서 대규모 자금을 쏟아부은 반도체 산업마저 어려움을 겪으면, 재무건전성에 우려가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산은은 지난 7월 출시한 ‘반도체 설비투자 지원 특별프로그램’을 통해 2개월 간 국내 반도체 관련 기업 22곳에 1조1000억원 규모의 대출한도를 승인했다.

앞서 산은은 지난 7월 1일 소부장(소재·부품·장비)·팹리스·제조 등 반도체 생태계전반의 설비·연구개발(R&D) 투자자금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2조원 규모로 출시했다. 이 프로그램은 18조원의 금융을 지원하는 정부의 ‘반도체 생태계 종합지원 추진방안’이 가동되기 전까지 산은이 자체 재원으로 진행하는 저리대출 프로그램이다. 대기업은 산업은행의 일반 대출 대비 0.8~1.0%포인트, 중소·중견기업은 1.2~1.5%포인트 낮은 우대금리를 받을 수 있다.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자금을 조달한 반도체 기업에는 SK하이닉스뿐 아니라 텔레칩스, 백광산업, 와이씨, 에프에스티, 하나마이크론, 테크윙, 동진쎄미켐, 넥스트칩, 엘비세미콘 등 크고 작은 반도체 공급망 대표기업들이 포함돼있다.

전문가들은 모건스탠리 보고서가 과하게 부정적인 전망을 담고 있다고 평가하지만, 산은 직원들은 이 보고서를 보고 웃지 못했다는 전언이다. 산은이 집행한 대규모 대출 프로그램에 대해 긴장감을 갖고 리스크관리 작업에 착수하게 된 배경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반도체 산업에 대한 부정적 전망 보고서가 특히 산은의 반도체 담당부서에서 화제였다”며 “시중 최저 수준의 금리로 17조원의 대출 프로그램을 가동시킨 만큼 건전성 악화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고 업황을 유심히 살펴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산은의 위험관리가 중요해진 건 한국전력의 적자 지속으로 재정건전성에 부담을 안고 있는 상황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산은은 한전의 지분 33%를 보유하고 있는데, 지난 2022년 말 한전의 당기순손실로 인한 산은의 지분법 손실이 8조507억원에 달할 정도다.

대기업 대출에 대한 부실채권도 늘어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산은의 고정이하여신비율은 지난해 6월 말 0.62%에서 9월 말 0.8%로 증가하고, 올해 3월 말에는 0.82%를 기록하는 등 건전성이 악화하는 중이다.

강석훈 산은 회장은 이와 관련 지난 6월 취임 2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산은의 자금공급여력 확보를 위해선 법정자본금 한도 확대 등 산은법 개정 필요성을 촉구했다.

강 회장은 “정부 출자에만 기대는 것은 한계가 있다.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재무구조를 갖추고 산은 자체적으로 이익잉여금을 늘려 자본 사이즈를 빌드업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솔루션”이라며 법정자본금 한도를 60조원으로 증액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꼬집었다.

모건스탠리는 ‘겨울은 항상 마지막에 웃는다’는 보고서에서 “메모리 반도체의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으면서 2021년 이후 처음으로 ‘후기 사이클’에서 ‘피크 사이클’로 전환됐다”며 “향후 분기에는 주가순자산비율(PBR)이 30% 감소하고 투자자가 포지션을 재설정하는 등 성장률 기대치가 정점을 찍고 반전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홍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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