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견인 주담대마저 감소세 전환
“건전성·가계대출 관리 주력 필요”
주요 은행권의 기업대출 성장세가 올해 최저 수준으로 줄어든 가운데,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여신 성장이 한계에 직면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기준금리 인하가 눈앞으로 다가오며 회사채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대기업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 국채의 세계국채지수(WGBI·World Government Bond Index) 편입이 확정되면서, ‘원화채 디스카운트’가 해소되면 자금 수급은 더 여유로워질 전망이다. 그간 상대적으로 낮은 한국 국채의 위상 때문에 원화 채권은 금리가 높았는데, WGBI를 추종하는 장기 자금이 유입되면 대기업은 채권을 통한 자금 조달 비용이 더 낮아질 수 있다.
▶은행 기업대출 성장세, 올해 ‘최저’수준=10일 금융권에 따르면 9월 말 기준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기업대출 잔액은 825조1885억원으로 전달 말(822조8716억원)과 비교해 2조3169억원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5대 은행의 잔액 상승폭은 올해 4월 10조원을 넘어선 이후 꾸준히 6~8조원 수준을 유지했다. 하지만 지난달 4조원대로 돌연 하락했으며, 이달 들어 다시금 한 달 만에 반토막 수준으로 줄었다.
2022년 이후 고금리를 틈타 막대한 이자이익을 거둔다는 비판이 이어진 후, 은행권은 기업대출을 중심으로 여신 영업을 확대했다. 2022년 말 기준 5대 은행의 기업대출은 총 703조7268억원에서 올 9월 말 825조1885억원으로 121조원(17%)가량 증가한 바 있다.
특히 같은 기간 대기업대출이 105조5174억원에서 163조4254억원으로 57조9080억원(54.8%) 증가하며 기업대출 성장세를 견인했다. 하지만 5대 은행의 대기업 대출 증가액은 지난 4월 6조원을 넘어섰지만 8월 들어 1조783억원으로 올 들어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지난달 증가액은 2741억원에 그치며 성장세가 사실상 멈췄다.
올 들어 은행의 대기업 대출 성장세가 주춤한 것은 분기 말 계절적 요인과 함께, 회사채 시장 활성화의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은행 대출이 아닌 채권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사례가 늘어난 것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상반기 회사채 발행 규모는 133조247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9.4% 증가해 반기 기준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이같은 추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기준금리 인하가 눈앞으로 다가온 상황이기 때문이다. 금리가 내려가면 기업의 이자 비용이 줄어들며, 신규 회사채를 발행해 자금을 확보하려는 시도가 늘어난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3분기 회사채는 24조6840억원이 발행되고 24조5341억원이 상환됐다. 이에 따라 1499억원 순발행을 기록했다. 2분기에는 3조6016억원 순상환 기조를 나타낸 바 있다.
시장에서도 이같은 회사채 훈풍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9월 미국이 빅컷(기준금리 0.5%포인트 인하)을 결정한 이후, 수요예측을 진행한 우량기업 채권 대부분이 발행 예정 물량을 넘어서며, 증액을 결정했다. 이화진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9월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의 불확실성이 해소된 이후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이 본격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은행 실적 ‘탄탄대로’끝나간다=기업 고객들이 발을 돌리며 은행들의 실적 위기감은 커지고 있다. 특히 올해는 기업대출 증가세가 주춤했음에도 주담대를 중심으로 한 가계대출 수요가 늘어나며 실적을 견인했다.
하지만 가계대출 잔액도 감소세로 전환하며, 전반적인 여신 영업이 한계에 직면했다.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이달 4일 기준 729조3934억원으로 전달 말 대비 1조5737억원 줄었다.
중소기업 영업을 확대하는 것도 부담이다. 고금리가 장기화되며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연체율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 건전성 관리에 부담을 느낀 은행들은 중소기업 대출 문턱을 높이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5대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신규연체액은 5조5210억원으로 지난해 동기(3조7485억원)과 비교해 47.3% 증가했다.
중소기업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도 저조하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10월 중소기업 업황전망 경기전망지수(SBHI)는 78.4로 전년 동월(82.7)과 비교해 4.3%포인트 줄었다. 해당 수치가 100미만이면 전망을 부정적으로 응답한 업체가 더 많다는 의미다. 은행권 또한 중소기업의 대출 상환 능력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5대 은행의 9월 말 기준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661조7631억원으로 전달 대비 2조429억원 증가했다. 이는 지난 4월 증가액(4조7563억원)의 절반 수준으로, 올 들어 가장 낮은 수준에 해당한다.
은행권에서는 올 4분기를 기점으로 실적 하락세가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최근 몇 년간 기업대출 규모를 크게 늘려온 상황이니 만큼, 당분간 건전성 관리에 주력해야 할 것”이라면서도 “가계대출 총량 기준이 새로 적용되는 내년을 기점으로 다시 여신 확대 영업에 나설 수 있을지는 상황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광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