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우리·기업銀 상품판매 중단
“상환 유도” 대출총량제 관리 총력
잔금대출 절실 실수요자 피해속출

대출 시장에 한파가 들이닥치며 자금 수혈이 급한 소비자들의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은행권의 연말 가계대출 증가율 관리를 위한 관리 방침이 강화되는 데 이어 일부 은행에서 비대면 상품 판매를 전면 중단하고 나선 영향이다. 이에 ‘내 집 마련’을 앞두고 잔금대출이 절실한 소비자들이 입주를 포기하는 등 실수요자 피해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울며 겨자먹기’로 더 높은 금리의 대출을 받으며 이자 부담이 늘어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사실상 가계대출 관리를 명목으로 한 은행권의 규제가 ‘대출 난민’을 만들고 있는 셈이다.

▶은행 대출 ‘셧다운’...소비자들만 발 동동=8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은행은 지난 6일부터 한시적으로 비대면 가계대출 상품 판매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대상 상품은 비대면 가계대출 상품 전체로 수신담보대출, 상생대환대출 등 일부 상품에 대해서만 예외적으로 판매가 허용된다.

우리은행도 이달 5일부터 다음달 8일까지 대표적인 비대면 주택담보대출 상품인 ‘우리WON주택대출(아파트·연립·다세대·오피스텔)’을 취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우리WONM전세대출 등 전세자금대출 상품 2종의 판매도 한시적으로 중단하기로 했다.

IBK기업은행의 경우 지난달 29일부터 주요 비대면 대출 상품 3개(i-ONE 직장인스마트론, 주택담보대출, 전세대출)의 신규 취급을 중단하고 있다. iM뱅크 또한 올 연말까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통한 6개 주요 대출 상품의 취급을 중단했다.

이는 연말까지 적용되는 가계대출 총량 관리를 위한 조치에 해당한다. 지난 1월 주요 시중은행들은 올해 정책성 상품을 제외한 은행 자체 가계대출 증가율을 전년 말 대비 2% 이내로 관리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금융감독원 또한 올해 목표치를 초과하는 곳에 대해 내년 영업에 제약을 주는 페널티를 예고하고 나섰다.

하지만 금감원에 따르면 올해 8월 21일 기준 5대 시중은행 중 4곳이 이미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치를 초과했다. 한 시중은행의 경우 증가율 목표치의 376.5%에 달하는 대출 증가율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금리 인상에도 주담대를 중심으로 한 가계대출 수요가 끊이지 않은 영향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은행들은 신규 대출을 조이는 데 이어 대출 잔액을 줄이기 위한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최근 비대면 대출 중단을 선언한 신한·우리·기업은행은 이달 말까지 가계대출의 중도상환수수료를 한시적으로 면제하기로 했다. 신규 대출 취급을 막는 데 더해, 기존 차주의 상환을 유도해 대출 잔액 자체를 줄이겠다는 취지다.

▶‘대출 중단’은 없을 거라더니...가계빚 급증에 ‘속수무책’=일각에서는 2021년 빚어진 대출 총량제의 부작용이 재현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021년 당시 가계대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정부는 ‘가계대출 총량제’를 시행해 대출 관리에 전념했다. 당시 대출 증가율 자체는 꺾였지만, 2금융권으로 ‘풍선효과’가 발생하고 실수요자들이 은행 대출을 받지 못하는 등 ‘부작용’이 속출했다. 이에 2022년 윤석열 정부는 총량 규제 조치를 사실상 폐지했다.

금융당국은 그간 대출 총량제 부활에 대한 지속적인 반박 입장을 내놨다. 김병환 금융위원장 또한 지난 9월 취임 후 첫 간담회에서 “2021년에 대출총량제로 인해 일부 은행이 대출을 중단했던 경우가 있었는데, 그런 상황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하지만 연말을 앞두고 대출 증가율 관리를 위한 대출 중단 사태가 발생하며, 금융당국의 다짐은 수포로 돌아갔다. 일각에서는 당국이 소비자 피해를 뒤로한 채 이를 ‘수수방관’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출 총량제로 인해 발생했던 부작용들도 재현되고 있다. 최근 은행들에서 대출 문턱을 높이면서 2금융권으로 대출 수요가 쏠렸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2금융권 가계대출은 지난 10월에만 2조원가까이 늘어나며, 2021년 11월(3조원) 이후 3년 만에 가장 큰 증가폭을 보였다. 같은달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증가폭이 한 달 만에 5조원에서 1조원으로 줄어들었다. 은행에서 밀려난 각종 대출 수요자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고금리 대출을 실행하며, 되레 가계대출 이자 부담이 늘어난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2금융권에서도 가계대출 관리를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놓고 있다. 이에 전방위적으로 대출이 막히며, ‘대출 절벽’에 부딪힌 소비자들의 피해는 더 늘어나고 있다. 특히 실거주를 위한 아파트 입주를 앞두고 잔금대출의 한도가 축소되거나 금리가 치솟으면서 입주를 포기하는 현상도 발생하고 있다. 투기 세력이라고 보기 힘든 주택 실수요자들을 중심으로 피해 사례가 나온 격이다.

심지어 올 연말이 지난다고 하더라도, 대출 여건이 확연히 나아질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본격적으로 기준금리 인하가 시작된 가운데, 대출 규제 완화가 자칫 다시금 가계대출 급증을 부추길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대출 판매가 재개되더라도, 대출금리 인하는 시차를 두고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은행들의 수익성만 늘어날 뿐, 소비자들의 금리 부담은 당분간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은행권 관계자는 “자칫 대출금리를 인하했다가, 향후 금리 인하가 더 진행될 수 있다는 신호로 작용할 경우 다시 부동산 시장을 부추길 위험이 적지 않다”면서 “금융당국이 주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선뜻 먼저 금리를 인하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오히려 한 번 인위적으로 금리를 올렸기 때문에, 시장 안정화가 확실히 된 상황에서야 금리를 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광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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