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고정금리 대출도 ‘고금리’ 갱신
은행, 가계대출 관리책임 소비자에 전가
서울 시내 한 거리에 설치된 은행 ATM기기 앞을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연합] |
#. 40대 직장인 A씨는 지난 9월 약 5년간 유지하던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바뀐다는 소식을 듣고 고민에 빠졌다. 기존 2.7% 고정금리가 5.12% 변동금리로 전환되며 두 배에 달하는 이자를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문제는 주담대 상품 금리가 4%대로 치솟은 데다, 대출이 가능한 곳도 찾기 힘들다는 거다. A씨는 “2금융권까지 알아봤지만, 적당한 상품을 찾지 못했다”면서 “이렇게 금리가 오를 줄 알았으면 미리 대환을 할 걸 그랬다”고 토로했다.
기준금리 인하에도 은행들이 가계대출 관리를 명목으로 대출금리를 끌어올리고 있는 가운데, 금리 갱신을 맞은 기존 차주들에도 인상된 금리가 적용되며 불만이 쇄도하고 있다. 특히 5년 전 2%대 저금리 대출을 받은 차주들의 고정 기간이 만료되며 이자가 두 배가량 증가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은행이 ‘대출 경쟁’을 통해 부추긴 가계대출 급증 문제를 가격 인상으로 대응하며, 소비자에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존 차주들도 금리 인상 ‘날벼락’=13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9월 국내은행이 신규 취급한 주택담보대출 평균 금리는 3.74%로 전달(3.51%)과 비교해 0.23%포인트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하반기 평균 4%를 넘었던 취급금리는 올 들어 줄곧 감소 추이를 보였다. 하지만 9월을 기점으로 다시 상승세를 나타냈다.
이는 은행들이 가계대출 관리를 위해 인위적으로 대출 금리를 상향 조정한 영향이다. 지난 7월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옥죄기가 본격화되며 은행권은 대출량을 줄이기 위해 금리 조정을 단행했다. 현재는 4대 시중은행의 주담대 금리 하단이 일괄 4%대를 넘어서며, 최저 2%대를 기록했던 지난 6월과 비교해 1~2%포인트 오른 상태다.
문제는 기준금리 인하에 따른 대출금리 하락을 예상했던 기존 차주들에도 4% 이상의 고금리가 적용되며, 전체 차주의 이자 부담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은행 고정형 주담대 차주가 전체가 부담하고 있는 평균 금리는 9월 기준 3.76%로 전달(3.75%)와 비교해 0.01%포인트 올랐다. 2015년 1월 이후 10년 8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에 해당한다.
▶‘갈아타기’도 ‘버티기’도 힘든 차주들=특히 2019년 하반기 저금리 시기에 혼합형(고정형 5년+변동형) 금리를 택한 이들의 갱신 시기가 도래하며 이자 부담이 곱절로 늘어나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2019년 혼합형 주담대를 받은 차주들의 평균 금리는 3분기 2.37%, 4분기 2.44% 수준이었다. 현재 은행들의 주담대 금리가 4~5%대인 것을 고려하면, 크게는 두 배 이상 이자 부담이 늘어난 셈이다.
규모도 작지 않다. 2019년 하반기 국내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23조6918억원가량 늘었다. 하반기 평균 76%의 주담대가 고정형(혼합형)으로 취급된 걸 고려하면, 최대 약 18조원에 달하는 고정형 주담대의 갱신 주기가 도래한 셈이다. 미리 대환한 사례도 적을 것으로 보인다. 올 들어 기준금리 인하가 시작되며 대출금리도 하락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진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소비자에 대출 관리 부담 떠넘긴 은행=주요 은행들은 올해 초부터 가계대출 증가율을 연 2% 이내로 관리하겠다는 방침을 정한 바 있다. 하지만 올 상반기 지속적으로 금리를 인하하며 ‘고객 확보’ 경쟁을 가속화했다. 뒤늦게 가계대출이 목표치를 초과하자, 시장금리에 역행하는 대출금리 인상을 감행하며 ‘늑장대응’에 나섰다. 자체적인 대출 경쟁이 부추긴 가계빚 부작용을 전체 소비자의 가격 부담으로 전가하고 있는 셈이다.
다만 은행권은 신규 차주와 기존 차주를 구별해 금리를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자칫 대환 문턱을 낮췄다가, 차주들이 몰리며 가계대출 잔액이 급증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가계대출 총량을 기준으로 대출 취급액을 관리하는 상황에서, 대환 대출 문턱을 낮출 수는 없지 않겠나”며 “기존 차주들에 특별히 다른 금리를 적용하는 것도 형평성 논란을 낳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광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