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銀 내부감사 적발…선제보고 안해
금감원 "위법"판단으로 대중에 공개돼
늦장보고 의식 “현재는 불법 입증 공조”
불법 감수했다면 강력한 동기 있었을수
孫 연루의혹 강력 부인, 증거 ·증언 필요
금융지주 회장 권력 강하지만 견제 없어
허술한 내부통제·지배구조로 사고 유발

“전 관리인이 일꾼들과 짜고 도둑질을 했다”(경찰)

“일꾼 관리 소홀로 물건을 잃어버렸을 뿐이다”(주인)

잃어버린 물건이 집 주인 소유라면 그리 큰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집 주인이 보관하고 있던 물건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물건을 잃은 것도 문제지만 과연 남의 물건을 대신 맡을 자격이 있는 지를 의심할 수 있다. 도둑과 짜고 물건을 빼돌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약 도둑이 내부자 또는 내부자 출신이라면 사안은 더욱 심각해진다. 사건의 실체를 제대로 밝혀야 한다.

▶ 손태승, 재임기감 친인척 대출 급증…연체 등 부실 많아

지난 12일 금감원은 OO은행이 2020년 4월 3일부터 올 1월 16일까지 당해 은행 모회사인 OO금융지주 전임 회장의 친인척 관련 차주를 대상으로 616억 원(42건)의 대출을 실행했다고 밝혔다. 해당 대출 건 중 28건(취급액 350억 원)에서 대출 심사 및 사후 관리 과정에서 통상의 기준, 절차를 따르지 않고 부적정하게 취급돼 지난 7월 19일 기준 19건(잔액 269억 원)에서 부실이 발생했거나 연체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관련 법률 검토를 거쳐 금융관련 법령 위반 소지에 대한 제재 절차를 진행하는 한편, 검사 과정에서 확인된 차주 및 관련인의 위법 혐의 등에 대해서는 수사기관에 통보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OO은행’은 우리은행, ‘전임 회장’은 손태승이다.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손태승 전 우리금융 회장 관련 부당대출 구조도 (자료:금융감독원)

손 전 회장 재임 기간에 해당 친인척 대출이 크게 늘었고, 은행이 입은 손실도 상당했다. 범죄의 위험까지 부담하면서 회장 친인척에게 무리한 대출을 했다면 분명 강력한 동기기 있었을 개연성이 크다.손 전 회장은 금감원의 의심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손 전 회장의 연루 여부는 수사 과정에서 부당 대출 관련자들의 증언이나 진술이 나와야 확인이 될 듯하다. 사모펀드 불완전판매 관련 제재로 금감원과 법정에서 맞서서 승소했던 손 전 회장이다. 다시 소송전을 벌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 우리은행 내부감사서 문제 적발…“심사 소홀” 판단, 즉각 보고 안해

금감원이 부당대출 사실을 공개했지만 문제를 적발한 것은 우리은행이다. 우리은행은 관련 직원 퇴직 과정에서 이뤄진 내부감사에서 문제를 인지했다. 우리은행은 대출심사 및 사후 관리 과정에서 통상의 기준·절차를 따르지 않은 것은 물론 차주가 허위로 의심되는 서류를 제출했음에도 별도의 사실 확인 없이 대출을 실행하고, 담보가치 평가나 담보 자체에 하자가 있는 대출도 승인한 사실을 적발했다. 금융회사에 금융사고가 발생하면 금감원에 즉각 보고해야 한다.

“금융기관은 그 소속 임직원이나 소속 임직원 이외의 자가 위법・부당한 행위를 함으로써 당해 금융기관 또는 금융거래자에게 손실을 초래하게 하거나 금융질서를 문란하게 한 경우에는 이를 즉시 감독원장에게 보고하여야 한다” (금융기관 검사 및 제재규정 41조1항)

우리은행은 지난 4월 해당 직원을 징계했지만 금감원에 보고하거나 수사기관에 신고하지 않았다. 여신심사 소홀로 인한 사건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게 우리은행 측 설명이다. 근거는 이렇다.

“다만, 감독원 검사에서 적출된 금융사고는 보고대상에서 제외하며, 여신심사 소홀 등으로 인하여 취급여신이 부실화된 경우에는 이를 금융사고로 보지 아니한다”(금융기관 검사 및 제재규정 시행세칙 67조1항)

우리은행이 이번 사건을 위법이 아닌 업부 소홀로 판단했다는 뜻이다. 우리은행은 뒤늦게 위법을 의심해 추가 조사를 벌였고 이달 9일 부당대출 관계자들을 경찰에 고소했다고 밝혔다. 고소 대상에 손 전 회장은 포함되지 않았다. 올해 금감원은 우리은행에 대한 검사를 진행했는데 이번 대출 건 때문에 시작된 것은 아니다. 결국 금감원이 문제를 지적한 시점에 위법에 대한 조사가 본격화 된 모양새다.

▶ 금감원 “위법” 판단 이후 사건 공개…잇따른 사고에 우리은행 ‘곤혹’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최근 열린 긴급 임원회의에서 \"부당한 지시, 잘못된 업무처리 관행, 기회주의적인 일부 직원들의 처신, 여전히 허점이 있는 내부통제시스템 등이 이번 사건의 원인\"이라고 꼬집었다.

‘외압’이 아닌 ‘기회주의적 일부 직원의 잘못’이라는 판단을 거듭 확인하는 모양새다. 이 논리라면 우리은행은 여전히 금감원이 이번 사건을 보고할 의무가 없다. 우리은행이 이번 사건에 위법이 의심된다는 데 동의한다면 불법행위 근절을 위한 노력이나 수사 협조 등의 언급이 있어야 자연스럽다. 문제가 된 직원이 왜 손 전 회장 친인척에 유리하도록 부당하게 업무 처리를 했는지 의심하거나 고민한 흔적도 찾기 어렵다.

금감원이 문제 삼지 않았다면 이번 부당대출 사건은 외부에 알려지기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은행은 금융위기 이후 신용연계증권CLN), 키코(KIKO), 파생결합증권(DLF) 부실 판매, 라임펀드 사기 의혹 등 금융권을 휩쓴 거의 모든 금융 사고에 연루됐다. 최근에는 700억원대 횡령 사실까지 드러났다. 우리은행 입장에서 전직 회장 친인척과 관련된 부당대출 사건은 외부에 알리기 부담스러울만한 사안이다.

▶금감원, 손태승에 ‘괘씸죄’(?)…금융지주 지배구조 문제로 불똥 튈 수

손 전 회장은 DLF 불완전판매 책임자로 지목돼 금감원에서 중징계를 받았다. 중징계가 확정되면 회장직 연임이 불가능했다. 손 전 회장은 금감원 징계에 맞서 소송을 제기했고 결국 승소했다. 금융회사 CEO가 금감원을 상대로 거둔 첫 법정 승리다.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 박정림 KB증권 사장,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 등 유사한 소송이 뒤를 이었다. 금감원 입장에서는 손 전 회장이 괘씸할 만 하다. 우리은행이 굳이 큰 문제 삼지 않은 사건을 금감원이 대중에 알린 배경을 두고 여러가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괘씸죄 여부를 떠나 이번 사건은 다른 금융지주 회장들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다. 지배구조 문제가 될 수도 있어서다. 금융지주 회장은 그룹 내에서 무소불위의 권한을 갖는다. 은행은 상임감사를 두지만 대주주인 금융지주가 선임권을 갖는다. 금융지주의 감사 기능은 사외이사로 구성된 감사위원회가 수행한다. 사외이사 후보는 회장이 추천한다. 자신의 인사권을 가진 회장을 사외이사인 감사위원이 얼마나 제대로 감시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금융사고는 금융당국 검사가 아닌 자체감사에서 꼬리가 잡혔다. 해당 CEO가 퇴임한 후에야 실체가 드러난 경우가 많다.

금융권에서 비리는 자리와 직결된다. 현직 경영진이 스스로의 허물을 드러내기는 어렵다. 은행장부터 따지면 국내 금융지주 회장의 CEO 재임기간은 짧게는 9년 길게는 12년에 달한다. 재임 기간이 길수록 후임자가 전임자의 잘못을 발견할 확률은 낮아진다. 이번에 의혹이 제기된 손 전 회장은 재임 기간(은행장 포함)이 5년을 조금 넘어 그나마 짧은 편이다. 무려 3000억 원의 횡령이 드러난 BNK경남은행도 사건이 발행한 때 재직한 김지완 전 회장의 재임기간은 5년 2개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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