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추종 ETF, 순자산 순위 100위권 하회
정부주도 한계 지적...“세제 등 혜택 필요”
고질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를 해소하기 위해 도입한 ‘코리아 밸류업 지수’가 출시하면서 오는 11월엔 이를 기초로 한 상장지수펀드(ETF)가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벌써부터 증권가에선 기업들의 추가적인 밸류업 프로그램 참여를 이끌어낼 만한 수준의 자금을 끌어모을 수 있을지 여부에 물음표가 달리는 상황이다.
2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내 증시에서 ETF를 운용 중인 자산운용사 26곳 중 10곳 내외에서 밸류업 지수를 활용한 ETF 출시 의사를 밝힌 것으로 나타났다.
오는 30일부터 밸류업 지수가 실시간 공개되면 관련 ETF 출시 절차가 본격화할 예정이다. 상장예비심사, 증권신고서 효력발생, 상장심사 및 펀드 설정 등에 통산 6~8주가 소요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오는 11월께 관련 ETF가 상장할 것으로 금융투자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만큼 밸류업 ETF에 대한 투자자금 수요는 일정 부분 발생할 것이란 게 업계의 전망이다. 하지만, 앞서 출범한 일본판 밸류업 지수인 ‘JPX 프라임 150’ 지수 추종 ETF가 받아든 성적표를 볼 때 우려의 목소리를 벌써부터 커진다.
한국투자증권 자산관리전략부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일본의 경우 밸류업 ETF 자금 유입이 극적으로 나타나지 않았다”면서 “일본 밸류업 지수 관련 ETF의 순자산총액(AUM) 순위는 100위권을 하회했다”고 꼬집었다. ‘JPX 프라임 150’ 지수를 기반으로 출시한 ‘아이프리 ETF JPX 프라임 150’, ‘NF JPX 프라임 150’ ETF의 AUM은 각각 9900만달러, 1600만달러로 116위, 217위에 집계됐다. AUM 1위 ETF인 ‘넥스트 펀즈 토픽스(1546억4600만달러)’와 비교했을 때 각각 0.06%, 0.01% 수준에 불과한 규모다.
한국투자증권은 “밸류업 지수 공개 이후 단기 수급 개선보단, 밸류업의 본질적 요소인 장기적 주주 가치 제고 실현 여부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고경범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과거와 달리 투자자들의 관심이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 등 해외 ETF 등까지 넓혀져 있는 상황인 만큼 기대만큼의 수급이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불거진 미국발(發) 침체 공포 등의 변동성 리스크로 국내 증시 자체 체력이 약화된 상황에서 밸류업 ETF 역시 정부가 주도한 펀드의 전철을 밟는 것이 아니냔 우려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앞서 상장폐지란 운명을 맞이한 대표적인 상품으로는 지난 2021년 한국거래소가 문재인 정부의 ‘2050 탄소 중립 정책’에 발맞춰 내놓은 ‘KRX 기후변화솔루션지수’를 추종하는 ETF가 꼽힌다. 지난 6월 KB자산운용의 ‘KBSTAR KRX 기후변화솔루션’에 이어 지난 11일엔 NH아문디자산운용의 ‘KRX기후변화솔루션’ ETF가 상장폐지됐다. 이 밖에도 투심을 끌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 상품으로는 ‘통일펀드’, ‘녹색성장펀드’ 등이 있다.
밸류업 지수를 기반으로 한 ETF의 성패는 기업, 투자자 등 이해관계자들의 참여도가 좌우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한 외국계 자산운용사 고위 관계자는 “지금처럼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기업 참여도가 미온적일 경우 실제 출시하게 될 ETF의 수가 한국거래소의 사전 조사에 크게 미치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한국거래소 기업공시채널(KIND)에 따르면 이날 기준 밸류업 공시 발표 기업은 총 12곳(코스피 10개, 코스닥 3개)에 불과하다. 전체 공시 대상 상장사 2595개의 0.46% 수준이다. 공시 예정 기업 역시도 27곳에 불과하다. 밸류업 프로그램 가이드라인이 시행된 지 약 4개월간 대부분의 기업들이 밸류업에 열의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뜻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김윤정 LS증권 연구원은 “투자자 참여도 개선에 핵심적인 역할을 할 세제 인센티브와 금융투자소득세 (금투세) 폐지 등 법 개정안은 국회에 의안으로 상정돼 계류, 논의 중”이라며 “향후 기업 참여도 개선 여부를 확인하는 게 관련 ETF 성패로 연결될 것”이라고 짚었다.
특히 밸류업 ETF가 속할 국내 주식형 ETF 시장 자체에 투자자들의 관심이 적어 세제 지원과 같은 혜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권병재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밸류업 개별 종목의 배당에서는 세제혜택이 적용돼도, 이들을 구성 종목으로 하는 ETF의 분배금에 대한 배당소득세는 그렇지 않다”며 “세제혜택 범위가 이들 ETF로 넓어진다면 밸류업 ETF 역시 추진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동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