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우선주의에 노골적 ‘美밀어주기’ 관측
“압도적 기술로 韓 반도체 존재감 높여야”
對中제재 득실 혼재, 보조금 흐름 예의주시
제47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가운데) 공화당 후보가 승리하면서 국내 반도체 업계에 미칠 파장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왼쪽은 삼성전자가 미국 테일러시에 건설 중인 파운드리 공장 현장 전경, 오른쪽은 인텔의 미국 애리조나주 반도체공장 건설 현장 [AP·삼성전자반도체 페이스북·인텔 제공]

제 47대 미국 대통령에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당선되며 국내 반도체 업계는 말 그대로 안갯속으로 빠졌습니다. 트럼프 당선인의 과거 발언 등을 종합해보면 아직 득이 클지, 실이 클지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의 ‘종잡을 수 없는’ 행보도 글로벌 반도체 업계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에 이미 투자를 했거나, 추가 투자를 발표한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셈법은 더욱 복잡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이 안갯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떤 전략을 펼쳐야 할까요? 칩만사에서는 트럼프 당선으로 국내 반도체 업계가 직면한 다양한 이슈과 그에 따른 득실, 대응 방안을 따져보려고 합니다.

▶노골적 ‘美 반도체 밀어주기’서 살아남으려면 결국 기술력=트럼프 당선에 따른 반도체 업계 이슈는 총 3가지로 요약됩니다. ▷대중 제재 심화 ▷미국 반도체 기업 우선주의 ▷보편 관세 부과 등입니다.

결국 핵심은 ‘미국 반도체 살리기’ 입니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분야에서는 미국 기업인 인텔·글로벌파운드리를, 메모리 분야에서는 마이크론을 노골적으로 지원할 것으로 보입니다. 일각에서는 이 과정에서 대만 TSMC의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 일부를 삼성전자가 뺏어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나오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TSMC가 가진 파운드리 기술력이 대체불가하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2기 정부의 불확실성에서 살아남으려면 한국 반도체 역시 ‘우리만’ 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가져야 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유회준 카이스트 인공지능반도체대학원장은 “트럼프는 미국 반도체 기업을 밀어줄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그 안에서 한국 반도체가 필수적으로 꼭 필요하다는 전략으로 가야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결국은 기술 싸움이라는 겁니다. 일례로 현재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 AI 가속기에 탑재되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최신 제품을 독점 공급하고 있습니다. 엔비디아 AI 칩의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고 있어 HBM에 대한 엔비디아의 니즈가 상당히 높습니다. 최근 최태원 회장이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HBM4 개발 속도를 6개월 당겨달라고 하더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엔비디아는 SK하이닉스의 HBM이 꼭 필요한 상황입니다.

▶득실 혼재 대중 제재 심화...中 공장 생산성 저하 우려도=대중 제재 심화로 인한 영향도 불가피할 전망입니다.

대중 반도체 수출 규제 기조는 앞서 트럼프 1기 정부부터 시작됐습니다. 중국 화웨이 등 일부 기업을 ‘블랙 리스트’에 올린 것이 시발점이었죠. 트럼프는 이번에는 중국 수입품에 최대 60%의 관세를 메기겠다는 공약을 내걸었습니다. 트럼프 2기에서는 어떤 형태로든 대중 제재가 더욱 강화될 것이 분명해보입니다.

대만 TSMC의 경우 벌써부터 중국과의 ‘선긋기’에 나섰습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8일(현지시간) 소식통을 인용해 TSMC가 중국 고객사들에게 오는 11일부터 7나노 이하 AI 반도체 주문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통보했다고 보도했습니다. 트럼프 당선인에게 밉보일라, 대중 규제 강화 흐름에 즉각적으로 동조하는 제스처를 취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한국 반도체 기업에는 득과 실 모두 있습니다. 미국이 중국 반도체를 옥죌수록 중국의 추격을 다소 늦출 수 있습니다. 최근 전문가들은 레거시(범용) 제품 뿐 아니라 첨단 메모리에서 중국의 기술력이 크게 올라왔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황철성 서울대 재료공학부 석좌교수는 최근 한국경제인협회가 주최한 특별대담에서 “최근 파운드리가 굉장히 큰 아젠다인데, 더 큰 문제는 D램”이라며 D램 시장에서는 중국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스(CXMT)가, 낸드 시장에서는 중국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스(YMTC)가 빠른 속도로 한국을 추격해오고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D램의 기술 발전이 낸드처럼 칩을 쌓는 적층 구조로 전환되면서 중국 업체들이 강세를 보일 여지가 생겼다는 분석입니다. 황 교수는 “D램에서도 쌓아올리는 기술이 중요해지면, 중국 CXMT도 못할 이유가 없다”며 “향후 극자외선 노광장비(EUV) 및 관련 기술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감소하면 한국이 후발국가 대비 보유한 D램 분야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중국 반도체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면 한국으로선 시간을 버는 셈입니다.

그렇다고 마냥 장점만 있는 건 아닙니다. 한국의 최대 반도체 수출국이 중국이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전세계의 공장이라 불릴만큼 PC, 스마트폰 등 다양한 셋트(완성)제품을 생산합니다. 최종 제품에 탑재되는 다양한 반도체를 소위 ‘블랙홀’처럼 수입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은 총 5033억 달러(약 693조원)였는데, 중국 시장의 규모가 1485억 달러(약 205조원)로 29.5%를 차지해 가장 많았습니다. 중국 해관총서가 지난 1월 공개한 지난해 중국 반도체 수입액은 3493억 달러(약 481조원)에 달합니다.

중국에 두고 있는 반도체 제조 공장의 생산성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큽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 상무부로부터 ‘검증된 최종사용자’(VEU) 자격을 예외적으로 받아 중국 공장에 첨단 반도체 장비를 반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트럼프 당선으로 VEU 자격을 연장할 수 있을지 불투명해졌습니다. 삼성전자의 시안공장은 전체 낸드 생산의 28%, SK하이닉스의 우시 공장은 전체 D램의 41%, 다롄 공장은 낸드의 31%의 비중을 차지합니다.

▶보조금·세제혜택 줄면 美 추가 투자 재검토 불가피=보조금 축소에 따른 미국 투자 전략도 수정될 것으로 보입니다. 트럼프 당선인은 앞서 반도체 지원법(이하 칩스법)에 대해 “반도체법과 관련한 거래는 너무 나쁘다, 보조금이 부자 기업에 돌아갔다”며 한국과 대만 반도체 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비판했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바이든 정부로부터 최대 수조원의 지원금을 받기로 이미 약속을 받았습니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 4월 삼성전자에 최대 64억달러(약 8조6842억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삼성전자가 지난 2021년부터 170억달러(약 23조6000억원)를 투자해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는 것에 대한 대가입니다. SK하이닉스도 인디애나주에 38억 7000만달러(약 5조 2000억원)를 투자해 패키징 공장을 세울 예정인데, 이에 대해 최대 4억5000만달러(한화 약 6200억원)의 보조금을 약속 받았습니다.

그러나 트럼프 후보가 당선되면서 모든 것이 불투명해졌습니다. 기업들은 내년 1월 트럼프 당선인이 취임하기 전, 보조금에 대한 합의를 마무리 짓기 위해 속도전에 나섰습니다. 블룸버그통신은 7일(현지시간) “대만 TSMC와 글로벌파운드리 등 일부 업체는 협상을 마무리했고 조만간 최종 보조금을 발표할 전망”이라며 “삼성전자와 인텔·마이크론 등은 여전히 계약과 관련해 일부 주요한 세부 사항을 처리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발표만 했을 뿐 아직 시작되지 않은 추가 투자에 대해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신중하게 재검토에 들어갈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삼성전자는 미국 상무부의 보조금 지원 발표 당시 오는 2030년까지 총 약 450억달러(약 62조3000억원)를 투자할 계획이라는 ‘깜짝 발표’를 했습니다. 그러나 트럼프 2기에 들어서 보조금 축소로 방향이 잡힌다면 추가 투자가 무산될 가능성도 나옵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칩스법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하겠지만, 자국 기업을 우선으로 하고 해외 기업에 대한 지원은 줄일 가능성이 높다”며 “이미 짓고 있는 공장은 어쩔 수 없지만 아직 시작하지 않은 그 이상의 추가 투자의 경우 보조금을 받지 못한다면 전면 재검토를 해야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간 반도체 생산은 한국, 대만 등 동아시아가 주로 맡아왔습니다. 미국의 반도체 생산 인건비는 동아시아에 비해 매우 높습니다. 미국이 약속한 보조금 및 세제혜택이 축소된다면, 한국 반도체 기업 입장에서는 다시 계산기를 두드려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김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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