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사금융 찾는 저신용자…이용자만 4년 새 30만명↑
“차라리 불법 솔루션 업체 찾아” 피해자 지원책 미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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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정호원·김광우 기자] “불법인 걸 모르고 이용한 건 아니었어요. 도무지 돈 나올 구멍이 없었을 뿐입니다\"
택배업에 종사하는 20대 김씨는 지난해 갑작스레 1억원의 빚을 떠안게 됐다. 은행에서 받은 비상금대출 300만원에 대한 이자를 납부하지 못한 게 시작이었다. 김씨는 이자를 충당하기 위해 타 대출을 찾았지만, 대출을 허락한 건 불법사금융 뿐이었다. 결국 김씨는 불법 중개수수료까지 지불하며 대출을 시도했다. 그러다 대출을 위해 타 통장으로 이체를 도와줘야 한다는 요구에 ‘인간 대포통장’으로 전락했다.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에 출석하며 변호사비로 1000만원 상당의 부담이 더해졌다.
1·2금융권을 비롯해 서민의 마지막 급전 창구 역할을 하는 3금융권인 대부업마저 신용대출을 조이면서 서민들이 불법사금융으로 내몰리고 있다. 협박 등 불법 추심, 최고금리 초과 대출, 심지어 대출 사기에 노출된 피해자도 늘어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저신용자들의 대출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될 경우, 이같은 불법사금융 피해자가 더 늘어날 수 있을 거라고 우려했다.
대부업은 금융위원회가 정한 법정 최고금리에 따라 연 20% 금리 내에서 사업을 영위하기 때문에 ‘불법사금융’과는 차이가 있다. 불법사금융은 법정최고금리를 지키지 않거나 악성 불법 추심 등을 행하는 '불법'을 가리킨다. 9월 금융위원회는 국민 경각심을 강화하기 위해 ‘불법사금융 척결 및 대부업 제도 개선방안 방안’을 발표하고 ‘미등록대부업자’ 명칭을 ‘불법사금융업자’로 변경했다.
19일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의원실이 코리아크레딧뷰로(KCB)로부터 받은 ‘금융업권별 채무 현황’ 자료에 따르면 전체 대부업권 대출 잔액은 지난 7월 말 기준 22조7888억원으로 지난 2021년 말(30조4108억원)과 비교해 25%(7조6219억원)가량 줄었다. 이는 법정최고금리(20%) 상한으로 인한 자금조달 부담에 고금리 기조가 겹치며, 역마진을 우려한 대부업권이 저신용자들에 대한 대출을 좀처럼 실행하지 않은 결과로 해석된다.
대부업 이용자 수도 줄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대부업 이용자 수는 동기간 72만8000명으로 집계돼 지난해 6월 말 84만8000명 대비 12만명(14.2%) 감소했다. 2021년 말 기준 대부업 이용자 수는 112만명에 달했지만,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5만원권을 정리하고 있다.[연합] |
신용대출 비중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지난해 대부업 담보대출은 전체의 62.5%(7조8177억원)인데 반해 신용대출은 37.5%(4조6970억원)에 불과했다. 2022년 6월부터 신용대출 비중은 계속 감소했다. 지난해 말 신용대출 규모(4조6970억원)는 지난해 6월말(6조171억원)과 비교해 1조3200억원(21.9%)줄었다.
제도권 마지막 보루인 대부업체에서 대출을 거절당한 이들은 불법사금융으로 밀려난다. 금융소비자학회가 지난 8월 발표한 ‘우리나라 서민금융의 현황과 발표’에 따르면 2021년 대부업체에 대출을 신청한 104만7000명 가운데 69%인 72만7000명이 대출승인을 거절당했다. 법정최고금리가 인하된 이듬해인 2022년에는 111만명 중 78%인 86만 10000여명이 대출을 받지 못했다. 불법사금융 이동 인원 수는 2020년 2만7000명에서 2022년 3만3000명 늘었을 것으로 추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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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금융진흥원 또한 6월 발표한 ‘저신용자(대부업·불법사금융 이용자) 및 우수대부업체 대상 설문조사 분석’ 보고서를 통해 지난해 대부업체에서 불법사금융으로 이동한 저신용자(6~10등급)가 최소 5만3000명, 최대 9만10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불법 사금융인 줄 알면서도 급전을 구할 방법이 없어 불법사금융을 이용했다고 응답한 비율도 77.7%로 대다수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불법사금융 시장 규모는 해마다 늘어가는 추세다. 금감원의 2017~2022년 불법사금융 시장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7년 52만명으로 추산되던 불법사금융 이용자 수는 2022년 82만명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대부업에서조차 신용대출 거절자가 나오고 있다”며 “대부 금융시장이 신용대출시장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게 됐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급전이 필요해 대출을 포기하지 못하는 수요는 불법사금융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면서 “불법사금융을 막기위한 법정 최고금리 20%라는 엄격한 규제가 오히려 서민들의 대출 문을 좁혔다”고 했다.
‘불법사금융’ 척결을 위한 정부의 노력도 큰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되레 불법사금융 피해는 갈수록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금감원에 접수된 불법사금융 피해상담·신고 건수는 2019년 5468건에서 2023년 1만 3751건으로 약 2.5배 증가했다. 2024년 5월 기준 6232건이 접수됐다. 미등록 대부, 고금리, 채권추심, 불법광고, 불법수수료, 유사수신 등이 피해신고에 포함됐다.
하지만 불법사금융 피해자에 대한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가장 활발히 피해자를 지원하고 있는 지자체 금융복지상담센터도 늘어나는 피해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지역별 쏠림 현상이 심하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한국금융복지상담협회에 따르면 국내 금융복지 상담센터는 주빌리 은행과 시도별 상담센터를 포함해 총 17곳에 불과하다. 각 센터는 지역민을 대상으로 센터별 하위 지역센터를 총괄한다. 하지만 서울에 3곳, 경기도 3곳, 인천 1곳이 운영돼 전체 41%가 수도권에 쏠려있다. 그 외 강원도 1곳, 전북 2곳, 전남3, 경남3, 대전 1곳만이 지원 업무를 맡아, 전체 지역을 포괄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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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적인 피해 회복 지원도 어렵다. 한 금융복지상담센터 관계자는 “불법사금융 이용자의 경우 신용회복위원회를 통한 사적채무조정이 불가능 해, 연계된 변호사에 접수를 도와주고 있다”면서도 “최근 불법사금융의 경우 카카오톡이나 텔레그램 등을 통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채권자’를 특정하기 어려워 한 명 한 명을 지원하는 데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을 받지 못해, 최대 수백만원의 수수료를 물고 사설 업체를 찾는 사례도 적지 않다. 악성 불법추심 피해를 입은 30대 여성 김씨는 “직접 금융감독원도 찾아가 보았지만, 법무사를 찾아가라고 안내할 뿐 별다른 조치는 없었다”며 “경찰에 신고해도 언제 해결될지 끝이 보이지 않아 사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실제 김씨는 올해 초 사설 채무정리 컨설팅업자를 찾아, 보유한 불법 채무 16건을 단 2주 만에 정리했다. 수백만원의 수수료를 냈지만, 이후 더 이상 불법 추심에는 시달리지 않았다. 또 다른 금융복지상담센터 관계자는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금융복지상담센터는 평균 4개월에 걸쳐 7~8회의 상담을 진행하는 데다, 피해자가 많아 모두에게 온전히 법적 지원이 이루어진다는 보장도 없다”면서 “피해자들이 사설 업체를 찾는 게 이해가 된다”고 말했다.
◆사채탈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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