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 ‘불법사금융’ 척결 선포…대부업 문턱 높여
등록 대부업 ‘절반’ 탈락…저신용자 공급 축소 우려
“불법사금융 더 늘어날 수…부작용 방지 대책 수반돼야”
서울 한 거리에 불법사금융 전단지가 부착돼 있다.[연합]

[헤럴드경제=정호원·김광우 기자] 금융당국이 불법사금융 척결을 위해 지자체 등록 대부업의 요건 강화를 추진하고 나선 가운데, 되레 저신용자의 대출 문턱이 높아지며 불법사금융 피해가 늘어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저신용자 신용 공급이 수반되지 않을 경우, 자격을 상실한 수천개의 대부업체가 불법사금융 업자로 활동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연동형 법정최고금리 도입 등 부작용을 방지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대부업 문턱 높인다…등록 대부업 절반이 ‘탈락’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지난 9월 대부업 관리감독 강화 기조를 담은 ‘불법사금융 척결 및 대부업 제도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더 강력한 수준의 법적 제재를 시행해, 갈수록 커지는 불법사금융 시장을 관리한다는 취지다. 여기에는 미등록 대부업과 최고금리 초과 대출 등에 대한 처벌 규정을 강화하는 방안이 담겼다.

아울러 금융위는 주요 내용 중 하나로 지자체 등록 대부업자의 자기자본 요건을 현행 개인 1000만원, 법인 5000만원에서 각각 1억원과 3억원으로 상향하겠다는 방침을 담았다. 금융위는 “대부업법 개정안이 하반기 국회에서 논의될 수 있도록 조속히 입법을 추진할 계획”이라면서 “대부업 신뢰도를 제고하기 위한 방안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서울 한 거리에 사채 해결 광고지가 부착돼 있다.[연합]

이에 따라 다수의 대부업자들이 제도권 밖으로 퇴출될 예정이다. 지난해 말 기준 지자체 등록 대부업자는 7682곳이다. 이 가운데 16%는 자기자본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23%는 대부잔액이 아예 없다. 만약 자기자본 요건이 강화되면 전체 절반 수준인 4300곳(56%)이 자격 미달로 퇴출당할 것으로 보인다.

대부업 등록 자기자본 요건은 ‘대부업 등의 등록 및 금융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약칭 대부업법)에 규정돼 있다. 현행 대부업법은 ‘등록하려는 자(시‧도지사 등록)는 1000만원 이상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금액 이상의 자기자본(법인이 아닌 경우에는 순자산액)을 갖출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한국대부금융협회 자료.

자기자본은 금융권의 건전성을 나타내는 ‘건강지표’다. 기업이 직접적인 금융비용을 부담하지 않고 장기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안정된 자본을 뜻한다. 그간 대부업 등록 요건인 자기자본 기준이 낮다 보니 신뢰할 수 없는 영세 대부업자가 난립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금융당국은 등록 요건 강화로 건전한 합법 업체가 늘어나고 서민의 접근성을 높일 것이라 기대한다는 입장이다. 지난달 11일 김진홍 금융위 금융소비자 국장은 제도 개선안 브리핑에서 “(영세 대부업 난립으로) 지자체 대부업 관리감독 실패 등 취약한 부분이 있었다”며 “지자체가 관리감독을 제대로 할 수 있는 범위를 획정해 놓은 뒤, 나머지 불법 업체에 대한 처벌도 강화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건전 대부업 지원을 위한 추가 대안 필요”

서울 한 은행 영업점 앞을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연합]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대부업 등록 문턱이 높아지며 소규모 업체가 대량 폐업하면서, 되레 불법사금융에 유입되는 미등록업체가 양산될 수 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등록 자격을 상실한 영세 대부업자들이 되레 불법사금융 업자로 전환해, 관련 불법 시장이 확대될 수 있다는 거다.

한 대부업계 관계자는 “회사 규모가 작더라도, 담보대출 등을 통해서 서민 공급에 기여하고 있는 대부업체들이 적지 않다”면서 “사실상 이들이 대출 자격을 잃어버릴 경우에 할 수 있는 일은 불법사금융밖에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불법사금융의 주 이용자인 저신용자에 대한 신용 공급을 늘려, 부작용을 예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안용섭 서민금융연구원장은“대부업 규제 강화로 저소득층과 저신용자가 합법적이고 안전한 금융 서비스에 접근하는 것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면서 “쥐를 구석으로 몰되, 도망갈 수 있는 퇴로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게티이미지뱅크]

법정최고금리를 연동형으로 바꿔 대부업의 안정적 운영을 지원하는 등 등록 대부업의 인센티브를 부과하는 당근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당국은 법정 최고금리 20%로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고, 우수 대부업체라고 해서 별다른 특혜도 없다”면서 “대부업이 건전한 시장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해줘야 (기존 등록대부업체가) 불법사금융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안 원장 또한 “현재 법정 최고금리가 20%로 제한돼 있지만, 기준금리가 상승함에 따라 대부업체들의 조달 비용이 증가해 실제 대출 영업이 어려워지고 있다”면서 “연동형 최고금리 제도를 도입하는 등의 현실적인 대책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등록 문턱을 높이게 되면 관리·감독의 질이 높아지긴 하지만, 불법 업체들이 양성화되는 데 일부 한계가 있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저소득층에 대한 자금공급이 줄어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정책서민금융 공급량에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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