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더리움 [사진: 셔터스톡]
[디지털투데이 홍진주 기자] 비탈릭 부테린은 한때 암호화폐 세계의 천재로 평가받았다. 그가 만든 이더리움(ETH)은 비트코인(BTC)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떠올랐고, 금융 시스템과 디지털 생활을 혁신할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개발자 이탈이 가속화되고 성과는 부진한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친암호화폐 정책까지 더해지며 이더리움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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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현지시간)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더리움은 암호화폐 시장에서 여전히 두 번째로 큰 몸집을 자랑하지만, 지난 1년간 44% 하락하며 2022년 이후 최악의 분기 성적을 기록했다. 반면 비트코인은 같은 기간 30% 상승했다. 지난 1월 3600달러에 거래되던 이더리움은 최근 1800달러 선으로 하락하며 연초 대비 약 50% 급락했다. 시장 점유율 역시 작년 17%에서 현재 7.9%까지 하락해 존재감이 급격히 줄었다.
이더리움 생태계 위기는 개발자 수 감소에서도 뚜렷했다. 일렉트릭 캐피털의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이더리움 관련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활성 개발자 수는 17% 줄었다. 반면 경쟁 플랫폼인 솔라나(SOL)는 밈코인 프로젝트가 활발해지며 개발자 수가 83% 성장했다. 암호화폐 회사 그레이스케일이 집계한 데이터에 따르면 솔라나는 2월에 이더리움 생태계보다 거의 2배 많은 활성 주소와 5배 이상의 거래량을 기록했다.
스탠다드차타드 애널리스트들은 이번 달에 발표한 보고서에서 이더리움의 정체성을 문제 삼으며 연말 가격 전망치를 60% 하향 조정했다.
블룸버그는 이더리움이 위력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 부테린이 초기 탈중앙화 비전에만 고수하면서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암호화폐 연구원인 비벡 라만(Vivek Raman)은 "새로운 환경은 매우 중립적이었던 이더리움에 어려운 경쟁의 장을 만들어냈다"라고 말했다.
비탈릭 부테린(Vitalik Buterin) 이더리움 공동 설립자 [사진: 셔터스톡]
또한 부테린이 미국 정치권과의 연대에 비교적 소극적 태도를 유지하면서 다른 암호화폐 프로젝트들에 비해 정책적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이더리움 경쟁력 약화의 원인으로 꼽힌다.
앞서 부테린은 한 콘퍼런스에서 "장기적인 가치를 제공하는 것만이 이더리움을 앞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더리움이 단순한 암호화폐를 넘어 디지털 계약과 탈중앙화 애플리케이션을 위한 플랫폼이 되기를 원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암호화폐를 포용하며 밈코인과 투기적 흐름이 주류가 되자, 부테린은 이에 반대하며 "정치인 코인은 민주주의에 위험하다"라고 경고한 바 있다.
이처럼 이더리움은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친암호화폐 환경에서 소외되고 있다. 장기적으로 네트워크를 탈중앙화하려 한 부테린의 고집이 이제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다.
아울러 이더리움의 시장 점유율 하락은 네트워크 업데이트 지연과 가격에 대한 무관심 때문이라는 비판도 있다. 이더리움 개발사 에스프레소 시스템(Espresso Systems)의 최고전략책임자(CSO)인 질 건터(Jill Gunter)는 "사람들이성장이 있다고 생각하는 곳으로 가고 싶어하는 것이 현실적인 문제"라며 "이더리움 커뮤니티는 오랫동안 가격에 대한 어떤 종류의 관심도 무시해왔기 때문에 이는 어려운 과제였다"라고 평가했다.
반면, 부테린은 이러한 입장에 대해 "이더리움이 단순한 카지노가 된다면 흥미를 잃을 것"이라며 이상주의적 접근을 고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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